2016년 10월 21일 금요일

중세 유럽의 역사를 바꾼 흑사병에 대하여

1) 유럽에서의 흑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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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의 근원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시작되어 크림반도의 무역도시 '카파'에서 이탈리아인들과 몽골인 간의 전쟁 중 유럽으로 넘어가게 돼

이 과정에서 흑사병에 감염된 시체에게 나온 병균을 가진 벼룩들이 쥐에게 붙었고, 이 쥐들은 흑사병에 감염된 쥐벼룩을 달고 돌아다니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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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에 감염된 쥐들은 유목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몽골 지방과는 다르게 유럽 곳곳을 헤집고 다녔고, 도시와 마을을 이루고 살던 유럽에선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흑사병이 퍼지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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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병이 퍼지기 시작하자 유럽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가 전염병을 퍼트린다고 믿어 몰살시키기도 했다고 해





  
아니 병균은 쥐가 달고다니는데 애꿎은 멍멍이, 고양이는 왜 죽이냐?

어쨋든 병균을 몰고다니는 쥐들을 잡을 동물들이 거의 박멸되다시피 하니 쥐들은 더욱 살판이 난거지

흑사병이 3개월만에 유럽을 뒤덮는 동안 각국 정부는 아무 대응을 하지 못했고 부모는 자식을 버리고 거리는 시신으로 가득했지. 냄새만으로도 이웃이 죽었는지 알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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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이탈리아 소설가 지오반니 보카치오는 1348년 흑사병이 플로렌스를 덮쳤을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소설로 적었는데, 그가 쓴 작품 중 <데카메론>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

"병에 걸린 시초에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 종기가 생겼는데, 이러한 종기 중 어떤 것은 사과 크기만큼 자라났고, 다른 어떤 것은 계란 정도만 했다. 사람들은 이 혹을 페스트 종기라고 불렀다”

“그리고 몸의 그 두부 위에서 순식간에 치명적인 페스트 종기(가래톳)가 온몸에 번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어 팔이나 허벅지 등에 퍼져 다른 모든 부위에 납빛 또는 검은 반점이 나타났다. 큰 반점은 그 숫자가 적은 형태로 퍼지고, 작은 반점은 많이 나타나는 양상을 보였다. 이 반점은 죽음에 대한 선고였다. 이 전염병에는 어떤 의사의 진단도 어떤 약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페스트에 대한 원인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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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이유도, 치료 방법도 알 수 없이 걸리면 죽는 병이 만연하자 중세시대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신의 저주라고 여기고 온갖 해괴한 예방법과 치료법을 행하기도 했지



그 당시의 치료법 몇가지를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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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흑사병이 지상의 '공기'로 인해 감염된다고 생각해서 지하 하수구로 들어가 살거나 하수구로만 돌아다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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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흑사병에 감염될 수 있는 공기나 악취를 피하기 위해 사람의 대변과 소변 등을 모아 얼굴과 온 몸에 바르거나 주머니에 넣어 목에 거는 등 소지하고 다녔다고 해. 일설에 따르면 흑사병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의 소변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꽤 비싸게 거래되었대. 소변으로 전신을 씻어내면 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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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시 공기나 악취를 통해 전염된다고 생각해서 향기나는 꽃을 휴대하고 다니며 수시로 냄새를 맡거나 허브잎을 주머니에 담아 휴대했다고 해. 당시의 무지에서 비롯된 행위였지만 이 경우에는 엉뚱하게도 훗날 유럽 향수제조의 발달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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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당시 의사들은 이 저주받은 전염병이 오염된 혈액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대. 그래서 감염된 환자의 정맥을 잘라 피를 빼내는 방혈(防血)법을 시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하도 많이 죽자 당시 종기치료에 사용되던 '거머리'를 이용해서 염증이 일어난 부위에 거머리를 이용해 피를 빼내도록 하게만들어. 물론 결과적으로 또 다른 세균감염을 불러일으켜 환자를 더 약하게 만들고 빨리 죽게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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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돈 많은 상류계층들은 잘게 조각내고 부순 에메랄드 가루를 음식이나 빵에 넣어먹거나 술에 타서 먹는 방법을 이용했다고 하네. 물론 효과는 없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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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흑사병에 감염되 죽어가는 환자들은 피부가 괴사해서 검은색으로 물들면서 죽어갔는데, 이것 땜에 검은죽음(흑사병)이라고 불렀대. 중세 사람들이 보기에 피부가 검은색으로 괴사해 죽어가는 흑사병은 마치 죄를 지어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했어. 종교의 힘이 대단히 컸던 시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걸 신의 형벌이나 신의 시험이라고 여겼대. 때문에 독실한 신자였던 종교인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자신의 온 몸을 채찍질하며 죄를 뉘우치기도 했다고 하네
이 외에도 몇가지 해괴한 치료법들이 더 있지만 넘어가기로 할게

어쨋든, 그렇게 종교의 힘이 득세하던 시절 흑사병으로 인한 죽음이 창궐하니 종교계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잖아?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6세는 1350년을 성년(聖年)으로 공표하고 로마에 오는 순례자들은 곧바로 낙원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어. 기록에 따르면 클레멘스 6세는 세속적인 향락으로 재정난을 유발했다고 하는 비난을 듣긴 하는데, 당시 흑사병을 신의 형벌이라고 여기고 있던 사람들에게 흑사병으로 죽은 이들의 죄를 면죄해주고 병을 퍼트린다는 유언비어로 인해 학살의 대상이 되었던 유대인들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내린 부분은 큰 업적으로 남아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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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건 교황의 말에 수십만이 넘는 순례자들이 로마로 향했다는거야. 당시의 흑사병에 대한 공포와 종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지. 어쨋든 결과적으로 수십만이 넘는 사람들이 여행함에 따라 흑사병은 더욱 퍼지게 되었어










2) 흑사병이 지나간 뒤 유럽에 끼친 영향





본의아니게 1부, 2부로 나뉘게 되었는데 지난 1부에서 유럽에서 흑사병의 시작과 확산과정에 대해 적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앞에 흑사병의 진행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어. 이번엔 흑사병으로 인해 체제가 무너진 유럽의 상황과 흑사병 이후의 모습에 대해 알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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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은 1350년 말을 기점으로 돌연 그 기세가 줄어들어

하지만 결과적으로 중세 유럽 인구 전체의 3분의 1이 줄어들어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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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생존한 노동자, 농민들은 인력 부족으로 임금이 엄청나게 올라버려. 이런 노동력 감소는 지배계층의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켰지

근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곡물의 수요도 감소했고, 땅으로 수입을 올리던 지주들은 높은 임금과 수입 하락의 이중고를 겪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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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과 교역은 마비되었고 무언가를 만들어 줄 숙련된 장인들도 흑사병으로 죽어 없어졌어. 생필품같은 것들도 생산량이 소요를 따라가지 못해 가격이 폭등했고 이런 현상은 지배계층이나 농민, 일반 시민들에게 모두 큰 타격을 주었어

후에 이 어려움은 지주에서 농민에게로 전가되었는데, 각종 봉건조세와 부과금 등으로 부담을 줄이려고 한거야. 이런 일련의 행위들로 인해 흑사병이 잠잠해진 유럽 각지에선 농민 반란이 수도 없이 일어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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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흑사병은 교육과 학문, 예술 등의 분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교육 쪽에선 특히 대학의 피해가 컸어

수업을 가르칠 교수들이 죽어 없어졌으며 수업을 들을 학생들 또한 엄청나게 감소했으니까. 이 때 유럽의 많은 대학들이 폐교를 면치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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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술 쪽에선 '죽음'이 자주 쓰이는 소재가 되었어. 살아남은 예술가들에게 있어선 그들을 덮쳤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너무나도 인상깊게 각인되었던거야

흑사병으로 인해 예술가들은 창작활동을 위한 여행을 금지당했다고 하니 그들이 표현할 가장 큰, 인상깊은 기억이나 주제는 흑사병과 죽음뿐이었지. 해골과 시체가 등장하는 그 유명한 '죽음의 무도'라는 장르가 인기를 얻은 때도 바로 이 시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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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중세 시대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던 교회는 흑사병이 한참 창궐했을 당시 신도들에 대한 구제, 즉 전염병 앞에서 그들의 믿음에 대해 보답하지 못했다고 하여 신뢰가 많이 추락하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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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중세 시대를 상징하는 종교와 봉건 영주의 전통과 권위에 대한 신뢰 상실로 중세 시대는 끝을 고하게 되지

한마디로 흑사병은 유럽의 역사를 바꾼 대격변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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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두운 시기가 지나고 유럽엔 문화, 예술이 꽃피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게 되지. '르네상스'는 재생, 부흥 등을 뜻하는 프랑스어라고 해. 다만 르네상스는 유럽의 근대를 앞당긴 역할을 했지만 그 시기 이탈리아 국내 정치는 엉망이었다고 해.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르네상스로 이어지게 되니까 간단히 넘어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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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흑사병은 1350년 말 기세가 누그러진 이후 몇 번인가 간헐적으로 다시 나타난 적이 있었지만 피해가 그렇게 크진 않았어. 그리고 1721년 프랑스 마르세유를 끝으로 550년간 종종 발병하긴 했어도 이전의 유럽 흑사병 사태처럼 수많은 사상자를 내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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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학자 알렉상드르 예르생>

흑사병이 지나간 뒤 그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에게 깊숙히 각인되었고 치료법, 백신 등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었어. 1896년에는 프랑스 세균학자 알렉상드르 예르생이 페스트균을 분리하는데 성공해. 그리고 설치류 동물들과 그 몸에 기생하는 벼룩들이 흑사병을 옮긴다는 것 또한 알아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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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이르러서는 페스트균은 전 세계에 퍼져있긴 하지만 항생제의 효과가 뛰어나 발병 사례는 몇 건 되지 않는다고 해. 다만 발병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상당히 높다고는 하지만 뭐, 요즘같은 시대엔 기본적인 위생관념이 있으니 페스트가 발병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쉽진 않아

이제 페스트는 무서운 전염병은 아니야. 하지만 새로운 질병들은 계속 출연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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